손흥민은 되고, BTS는 안 된다? 국가대표 운동선수 병역특례와 정체성의 정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병역특례 대상인 손흥민이 지난달 3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퇴소하였다. 손흥민은 대체복무요원으로 편입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이에게 병역이 의무로 지워지는 징병제 사회에서 국가대표 메달리스트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예외, 본 고는 운동선수 병역특례에 대한 간단한 역사와 그 수용에 관한 집단적 심리를 탐색한다.
▣ 병역특례, 누구에게 주어져 왔나?
병역특례 제도는 1960년대 후반부터 나타난 병역자원의 잉여 현상에서 비롯되었다. 징집 인원은 많았지만, 그 자원을 충분히 관리할 능력도 비용도 부족했던 당시 정부는 군인들을 산업현장의 노동력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제정된 것이 1973년 ‘병역의무의 특례규제에 관한 법률(1973.03.03.)’이다. 여기에 산업체에 투입될 군인 노동력뿐 아니라 운동선수도 그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다만 당시 법에는 막연히‘국위선양’이란 함의만 있을 뿐 구체적인 자격이 특정되지는 않았다. 1970년대 병역특례 선별권이 주어졌던 특기자 선발위원회가 선정한 유일한 병역특례의 수혜자는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당시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에 대한 기준은 지금보다 훨씬 높고 엄격했다.
운동선수의 병역특례 대상을 구체화한 건 5공화국 정부였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올림픽 메달리스트뿐 아니라, 세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모두 대상에 편입되었다. 심지어 한국체육대학교 상위 10% 졸업생까지 병역특례 대상이었다. 스포츠의 정치화가 뚜렷했던 시기,‘국위 선양’의 범위는 넓었고, 스포츠계에 대한 포상도 확실했다.
1990년대에는 지금처럼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로 특례의 대상이 축소되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때는 16강에 진출한 축구 대표팀에게도,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4강에 진출한 야구 대표팀에도 병역특례는 주어졌다. 언론의 지지와 여론만 형성되면 즉흥적 포상으로 내려졌던 병역특례, 결과적으로 당시의 조치는 포퓰리즘이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근래의 병역특례의 가장 큰 화두는 공정성과 형평성이다. 올림픽 3~4위 전에서 단 4분만을 뛰고 혜택을 받은 축구선수나, 아시안게임 야구와 같이 별다른 활약 없이 특례를 받은 선수들의 무임승차 논란이 원인이 되었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병역면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위 선양은 왜 운동선수만의 몫인가.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며 한국을 알리고 있는 BTS와 같은 대중가수는 어째서 병역특례의 대상이 될 수 없을까. 운동선수든 대중가수든 젊은 시절 몸 자본으로 먹고살아야 하고, 병역이 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운동선수만 병역특례의 혜택을 받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 병역이란 정체성의 정치
“누구에게 병역특례를 부여할 것인가”란 질문은 공정성과 형평성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반드시 군대에 가야 하는 절대다수의 남성에게 아무리 공정하고 형평성을 따져본들 그것은 예외적이고 특별한 조치일 뿐이다. 내가 군대에 끌려갔듯, 사실 “모두 군대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든단 말이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수많은 차이와 사회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국민인 이유는 손흥민이든, BTS든 그 대상이 아무리 대단한 누구일지라도 예외 없이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는 그 믿음에 기반한다. 대중은 병역을 상기하며 “우리가 같다”는 동일성을 확인하고,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모두 이 의무를 나눠서 지고 있다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병역은 국민이란 정체성을 확인하는 정치적 장치인 셈이다.
모두가 주인이자, 평등한 국가의 구성원이란 ‘상상’, 베네딕 앤더슨은 이를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라 불렀다. 우리를 평등한 수평적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상상케 하는 병역. 우리는 병역을 통해 우리가 ‘국민’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다름과 차이, 불평등의 요소는 국민이란 이름으로 일순간 은폐된다. 병역은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정체성 정치의 핵심 기제인 셈이고, 그 때문에 병역특례란 형평성과 공정성 같은 논리의 문제이기보다 상상된 공동체를 통해 사유하는 감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병역과 스포츠, 상상된 공동체란 생각의 유사성
운동선수가 병역특례의 대상인 이유는 물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유지되는 건 근본적으로 대중 여론이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은 왜 스포츠가 예외적이고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인식할까?
병역과 마찬가지로 스포츠는 그 사유에 있어‘국민’이란 상상된 공동체를 빈번하게 소환한다. 운동선수에게 부여된 국가대표란 말의 언어적 상징, 가슴에 새겨진 국기, 시상식 때 울려 퍼지는 국가 그리고 아군 적군으로 나눠 전쟁을 벌이는 듯 펼쳐지는 경쟁이란 이항대립의 코드까지, 이 모든 상징 장치들은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를 개인의 영광과 소중한 밥벌이를 위해 분투하는 존재를 넘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를 대신해, 국민을 대표해 싸우는 전사로 상징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뜨거운 가슴으로“대한민국”을 목 터지라 외치며 우리가 국민이었다는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는가. 병역이든 스포츠든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은 국민이란 동질적 존재로 환원한다. 그 유사성이야말로 다른 어떤 분야보다 국가대표 운동선수의 국제대회에서의 성취가 국위 선양이자 병역특례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유일 것이다.
▣ BTS도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을까?
손흥민이 병역 혜택을 받은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은 운동선수의 병역특례 논란이 크게 일었던 대회였다. 일부 선수에 대한 병역특례 무임승차의 논란이 일었고, 병역특례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부터, 그 자격을 금메달에서 누적점수제로 전환하자는 주장, K팝 한류를 선도하는 BTS와 같은 대중가수에게도 병역특례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 등 사회적 논의가 빗발쳤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심의에서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 운동선수의 병역특례 조건을 유지 시키고, 대중문화예술인은 특례대상에서 배제하였다.
스포츠를 통한 획득한 위세를 외부에 알림으로써 얻어진다는 ‘국위 선양’의 효과. 그러나 정작 국위 선양의 효과란 내부를 향한다. 국민 스스로 국가공동체의 일원이란 정체성을 확인하고 가슴 뿌듯해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병역특례법을 유지 시킨 현 결정은 스포츠가 그 역할에 좀 더 충실함을 확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란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이 가져오는 사회통합 효과도 임시적일 뿐, 그 아래 숨겨진 차이와 갈등과 불평등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 부각 될 수도 있다. 국민이란 정체성의 확인이 스포츠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리도 만무하다. 상상된 공동체를 확인하는 도구가 스포츠가 될지, 대중음악이 될지, 이 모든 게 앞으로는 어색한 일이 될지, 앞으로의 변화를 지켜볼 일이다.
2020년 서울스포츠 6월호 No. 356 스포츠 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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