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의 함의
한 제약회사의 TV 광고에 등장했던 배우 남궁원의 "체력은 곧 국력입니다"란 말을 기억할 것이다. 이는 박정희 시대의 스포츠-체육의 의미를 가장 잘 비유하고 있다. 이 말은 5․16 직후 추진한 ‘재건국민운동’의 슬로건으로 등장하였는데, 당시 재건국민운동본부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에 속해있었다. 이 운동이 추진한 내용을 살펴보면 ① 용공중립사상의 배격 ② 내핍(耐乏:어렵고 가난함) 생활의 여행(勵行:힘써 행함) ③ 근면정신의 고취 ④ 생산 및 건설의식의 증진 ⑤ 국민도의의 앙양 ⑥ 정서관념의 순화 ⑦ 국민체위의 향상 등 이었다(국가기록원, 2011.06.21). 이처럼 재건국민운동은 반공이란 이념적 기반 위에 도덕적 청교도주의를 표방하였는데, 당시의 군사정권의 이 같은 파퓰리즘에 입각한 각종 조치들은 처음에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강준만, 2004). 이학래(2008: 14)는 재건국민운동을 관주도로로 이루어진 ‘인간개조’사업으로 정의하였는데, 국가가 나서 개인의 의식과 체력(정신과 신체)을 개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체력은 국력이라는 슬로건은 개별화된 육체의 의미를 국가에 종속시키는 전체주의적 성격과 도구화된 신체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국가의 개인 신체에 대한 관리가 갖는 함의를 지적한다고 해서 국가가 개인의 건강이나 체력을 방치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국가가 개인의 '신체'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혁명정부 정책의 강압적 동의의 기반은 혁명공약의 핵심인 국가 자립경제의 달성이었다. 그리고 국가 재건과 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다면 개인의 신체는 기꺼이 국가에 종속될 수 있다는 개념은 지배담론으로서 성장․발전주의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탈식민지 국가에서 성장․발전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식민지권력을 통해서이다. 일제 제국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한 논리의 핵심에 성장․발전주의 담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내적 구조가 존재하고, 외부의 충격에 의해 그러한 장애를 제거할 때만이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때 식민 지배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개발과 성장은 진보, 발전과 같은 것이다(이광일, 2003: 203). 바로 제국주의 헤게모니적 지배의 논리이다.
이 같은 성장․발전주의는 탈식민지 국민국가에 그대로 적용된다. 즉 근대화론은 식민지 시기 제국주의 지배담론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담론이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시기의 그것과 차별성을 보이는 것은 탈식민지 국가의 경우 ‘국가 없는 민족주의’가 ‘국가 있는 민족주의’로 전환되면서 ‘저들의 목표’였던 성장․발전주의가 ‘우리들의 목표’로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대중의 동원, 참여 가능성을 효율적으로 제고시켰다(이광일, 2003: 205).
박정희 스포츠-체육 정책의 전체주의적 성격의 역사적 연원 역시 일본의 근대 체육정책으로 소급된다. 일본이 이미 19세기 무렵 국민국가의 규율화를 위한 모든 장치들의 정점에 근대체육을 위치시키고, 그것을 제국주의의 규율화된 국민양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했던 많은 과정이 박정희시대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확장을 위해, 천황의 충실한 신민이 되기 위해 규율에 복종하고 신체를 단련해야 했다면, 이제 성장, 발전을 최고 가치로 하는 탈식민지시대의 국민들은 국가발전의 역군이 되기 위해 신체를 단련해야했다. 제국주의와 천황의 자리에 국가가 위치하게 된 것이다.
‘모든 피식민국의 근대는 식민지 근대이다’란 말이 있다. 제3세계의 독립 국가들이 해방이후 새로운 발전국가를 상상하길 원하지만 그들에겐 대안적 근대성을 상상할 언어도, 그럴만한 지식도 없다는 의미이다(조혜정, 1994). 박정희 시대의 스포츠-체육을 하는 개인이 국가의 주도하에 발전국가의 동원사회란 목적에 부합하는 국민(nation people, 國民)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일제 제국주의 시대의 학습효과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도 한국 스포츠에서 만연해있는 개인의 자유 억압과 권위주의적 시스템의 근본적 원인 역시 그 시절 성장․발전의 지배적 담론 아래 스포츠-체육에 참여하는 개인이 부정되고 국가의 성취와 같은 외재적 목적이 중시되었던 동원 이데올로기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2011년 한국스포츠사회학회 특별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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