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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Seungbaek Blog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21. 04:36 1960년대 대한학교체육회를 통해 살펴본 역사적 교훈

이 연구에서 다룬 1960년대 대한체육회와 학교체육회의 갈등에 대한 분석, 더 엄밀하게 학교 기반 엘리트 스포츠 육성에 관한 분석은 오늘날 어떤 통찰을 제공하고 또 어떻게 현장 적용할 수 있을까? 본 장에서는 이 주제에 관하여 ‘통찰’과 ‘실천’이란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여기서 통찰은 이 문제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인식의 지평을 의미하고, 실천은 과거의 사건을 교훈삼아 오늘날 스포츠 육성 정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차원의 현실적 타진이라 하겠다. 1) 대한학교체육회의 역사적 활동이 주는 현대에 대한 통찰 1960년대 학교체육회의 역사적 활동과 역동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 학원스포츠를 둘러싼 엘리트 스포츠 진영과 학교체육 개혁진보 진영의 충돌과 닮아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학원스포..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21. 04:36 Ⅵ. 대한학교체육회의 흡수통합과 그 이후

1. 대한학교체육회의 흡수를 위한 정치개입과 전략 1966년 12월 24일 김포공항에서 열린 제5회 방콕아시안게임 선수단의 귀국 환영회에서, 손기정 단장은 삭발한 채로 등장하여 대한체육회와 KOC 사이의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KOC가 승인 없이 예산을 집행하고, 공식 석상에서 단장을 배제하는 등 선수단을 독단적으로 장악했다는 항의의 표현이었다(김미숙, 2020; 한태룡, 2017). '손기정 단장 삭발 사건'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단에 대한 권한을 누가 소유할 것인지에 대한 KOC와 대한체육회 간의 권력 투쟁에서 비롯된 사건이다(한승백, 2023). 이 사건은 1968년 체육단체 통합의 배경으로 자주 인용된다. 그렇다면 대한체육회와 KOC 간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학..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21. 04:36 Ⅴ. 대한학교체육회의 활동 및 사업

1. ‘학교체육 참가 실시 요강’ 제언 앞서 제3장 '학교체육회의 재도약 배경'에서는 문교부가 대한체육회의 빈번한 대외경기대회 개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시즌제 도입을 지시한 사건을 소개했다(조선일보, 1965.03.16.; 조선일보, 1965.03.19.). 이 대책은 1965년 3월에 발표되었으나, 대한체육회의 강력한 반발과 정치적 압력으로 보름 만에 철회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인 1966년, 학교체육회가 적극적으로 문교부에 건의한 ‘학교체육 참가 실시 요강’을 통해 다시 이슈화된다. # 이종택 구술 5: 대한체육회하고 대한체육회 가맹 경기단체가 32개 있었거든요. 32개 경기단체의 경기대회를 1년에 7번, 8번 나오라 그런다, 그러면 소위 학업 결손을 어떻게 할 것이며, 애들의 전인적 인격 형성은..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21. 04:36 Ⅳ. 대한체육회의 조직 정비

앞 장에서 1960년대 중반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대외경기 및 재원 몰아주기 등의 문제가 학교체육의 가치를 왜곡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체육교수와 체육교사를 중심으로 대한학교체육회를 재정비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전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장에서는 1965년 사단법인 인가 이후 사무국을 포함한 학교체육회의 조직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 이종택 구술 3: 교직계가 나서서 학교체육의 중요성을 주장하게 되었어요. 체육교수들, 서울대 이병위 선생(1906~1973), 고려대학교 김오중 선생(1919~2005), 경희대 문현주 선생(1914~1968), 이분들이 이론이 있는 양반이거든. 이런 분들이 중심이 되어서 학교체육은 올바른 정도를 가야한다......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21. 04:35 Ⅲ. 1960년대 대한학교체육회의 재도약과 그 배경

이 연구는 1960년대 체육단체 간의 역동을 조명하기 위해 체육원로 故 이종택 선생의 구술자료를 활용한다. 이 자료는 2006년 11월에 녹취되었지만, 연구자의 능력 부족으로 그동안 발표되지 못하고 묵혀있었다. 그러나 이 자료에는 1960년대 대한학교체육회가 추구했던 이상과 도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대한체육회와의 역동의 과 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대한학교체육회의 활동과 그 의의를 살펴보는 데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판 단되어 구술자의 사후에라도 자료를 발표하고자 한다. Benjamin(2009)은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봐야 한다”고 하였다. 그의 말처럼 2000년 이후 등장한 ‘공부 하는 학생선수 담론’, ‘학교체육진흥법의 제정’,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문’에 따른 ‘학생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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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9. 11:22 1969년 예비고사 시대의 체육특기자제도

1969학년도부터는 ‘대학입시자격고사(이하 예비고사)’가 실시되었다. 6년 만의 국가고사 부활이었고, 예비고사를 통과한 학생에 한하여 대학별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다만 체육계열 학과 입학생의 경우 교육법 제111조 1항(법률 제2045호)에 “예능 또는 체육학계의 학과에 입학할 자는 예비고사를 거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예외를 두어 예비고사를 면제해 줬다. 체육관련 학과가 있던 대학은 예비고사제에서도 특기자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문제가 된 것은 고려대와 연세대를 비롯한 체육학과가 없는 대학들이었다. 63학년도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가고사의 면제 혜택이 체육계열 학과에만 주어짐으로써, 체육관련 학과가 없는 대학들이 체육특기생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체육특기 지원자가 자력으로 예비고사를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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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19. 11:21 1964 ~ 1968년의 체육특기자제도

1964학년도부터 1968학년도까지의 대학입시는 국가고사 없이 전․후기 각 대학별로 시험을 치렀다. 앞서 해방이후부터 62년까지의 국가개입 공백기와 마찬가지로, 대학별 자율선발 체제 아래서 대학의 우수선수 영입전략은 보다 쉽게 관철될 수 있었다. 체육특기자 선발과 관련하여 문교부는 일반응시자와 함께 응시하되 정해진 기준에 의거 특전을 부여하였고, 합격자의 선정은 각 대학에 일임하였다(경향신문, 1963.06.19.). 단 연세대나 고려대 같이 체육계열학과가 없는 경우 대학정원의 2%(66학년도는 3%)로 특기자 선발 인원을 제한하였고, 체육대학이나 체육학과가 있는 한양, 경희, 숙명 등에서는 문교부가 지시한 비율에 관계없이 우수선수를 우선적으로 모집할 수 있었다(동아일보, 1965.02.16.). 문교부..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19. 11:20 1962 ~ 1963년의 체육특기자제도

여전히 체육특기자제도가 군사정부에 의해 1972년에 생겨났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체육백서 같은 정부 문서도 왜곡되어 있다. 그러나 60년대 신문만 들춰봐도 터무니 없는 주장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체육특기자제도를 1972년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게 단순히 연도의 착오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2년은 유신이 선포된 해였고, 이 제도를 자연스럽게 국가주의 스포츠에 국한하여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간과하게 되는 게 행위자이다. 체육특기자제도 72년 기원의 왜곡 주장은 이 제도가 왜 이렇게 뿌리깊이 한국 학원엘리트스포츠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행위자가 어떻게 역할 했는지에 대한 인식을 잊게한다는 것이다. 체육특기자제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