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Seungbaek Blog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격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약속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내 유일의 국제규격 활강 경기장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환경과 스포츠의 충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그렇게만 이해하면 사태의 복잡성은 쉽게 사라진다.
가리왕산 논쟁에는 이미 훼손된 자연, 지켜지지 못한 약속, 제도화되지 못한 스포츠 인프라, 그리고 뒤늦게 등장한 대한체육회의 방어 논리가 뒤엉켜 있다. 산을 되살릴 것인가, 스키장을 남길 것인가만으로는 이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복원이냐 존치냐”가 아니라, 이미 훼손된 공간을 앞으로 어떤 공공적 가치로 관리할 것인가이다.
나는 가리왕산 개발 당시 제시되었던 복원 약속이 순수한 의미의 원상회복을 전제로 한 약속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정말 복원이 가능한 숲이었는가. 수백 년 동안 형성된 산림 생태계는 경기장을 철거하고, 흙을 덮고, 풀과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행정적으로는 복원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태학적으로는 훼손지 복구와 지형 안정화, 식생 재도입, 재해 방지에 더 가깝다.
당시에는 올림픽 개최라는 국가적 시간표가 정해져 있었다. 국제규격 활강 경기장이 필요했고, 환경단체와의 갈등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회 이후 복원”은 실제 복원 가능성을 따진 계획이었다기보다, 시설 조성의 길을 터 준 정치적 수사였다.
그렇다고 약속이 불완전했으니 잊어도 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500년 숲이라 불리던 공간에 국제규격 동계스포츠 시설이 만들어졌다면, 그 이후에는 더 무거운 책임이 따라야 했다. 훼손지에 풀을 심고 장기적으로 생태 회복을 기다리는 일과, 이미 조성된 시설을 공공적으로 활용하는 일 중 어느 하나가 객관적으로 절대 우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남는 물음은 하나다. 이미 훼손된 공간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그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에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알파인스키 활강과 슈퍼대회전이 열렸다. 이 종목들은 회전이나 대회전과 달리 더 길고 가파른 경사면을 필요로 한다. 이 경기장의 고유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에서 활강과 슈퍼대회전 같은 스피드계 종목을 치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국제규격 경기장이라는 점이다. 한국이 앞으로 알파인스키 국제대회를 유치하거나 스피드계 종목의 훈련 기반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시설의 가치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가치가 대한체육회의 책임 있는 운영 계획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말 가리왕산이 대한민국 동계스포츠의 핵심 인프라였다면, 올림픽 직후부터 이 경기장을 체육 제도 안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어야 한다. 전국동계체육대회, 국가대표 훈련,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 국제대회 유치 계획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어야 했다.
물론 가리왕산의 활용이 쉬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가리왕산은 산림청 소유 국유림이었고, 복원 약속과 환경단체의 반발, 정선군·강원도·정부 부처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제설, 코스 관리, 안전 관리, 운영비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움 때문에라도 대한체육회는 더 일찍 답을 내놓았어야 했다. 이 시설을 어떤 종목의 훈련과 대회에 쓸 것인지, 비용과 관리는 누가 맡을 것인지, 환경 훼손과 사후 관리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올림픽 이후 전국동계체육대회 알파인 종목은 가리왕산이 아니라 용평에서 열렸다. 가리왕산 알파인경기장은 곤돌라 관광 자원으로는 살아남았지만, 정작 스키 인프라로서는 제도 안에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뒤늦게 “국내 유일의 국제규격 경기장”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주장은 쉽게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가리왕산의 비극은 숲이 잘려나간 데서 끝나지 않는다. 복원이 어려운 숲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하며 개발을 허용한 국가의 언어, 그렇게 만들어진 시설을 동계스포츠의 제도적 기반으로 정착시키지 못한 대한체육회의 무능도 그 비극의 일부다. 지역사회는 곤돌라 관광이라는 새로운 활용 경로를 만들었고, 환경단체는 복원 약속의 이행을 요구했으며, 대한체육회는 뒤늦게 스포츠 인프라의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이 모든 입장은 각자의 논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미 훼손된 공간을 앞으로 어떻게 책임 있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모두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리왕산의 미래를 말하려면 두 가지 사실을 함께 보아야 한다. 하나는 가리왕산을 올림픽 이전의 숲으로 완전히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국제규격 경기장이 동계스포츠의 제도적 기반으로 활용되지 못한 채, 복원 논의와 곤돌라 관광 활용 사이에서 표류해 왔다는 점이다.
생태복원과 스포츠 활용 중 어느 한쪽을 도덕적으로 절대화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이미 훼손된 공간의 사후 가치를 어떻게 구성하고, 그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설계다. 종목 활용, 비용 부담, 환경 관리, 지역사회 참여 방식이 함께 제시될 때 비로소 존치든 복원이든 사회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가리왕산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국가 이벤트를 위해 자연의 시간을 끊어낸 뒤, 우리는 그 상처를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가. 풀을 심는 것으로 충분한가. 이미 만든 시설을 뒤늦게 활용하겠다는 주장만으로 충분한가. 어느 길을 택하든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계획이다. 특히 대한체육회가 가리왕산 경기장을 정말 지키고자 한다면,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지난 시간의 침묵까지 설명할 수 있는 책임 있는 계획부터 내놓아야 한다.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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