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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3: 수업 시간의 월드컵은 교육이었나

스포츠와 정치경제

by 남산도사 2026. 10. 23.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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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등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월드컵을 보여준 일이 논란이 됐다. 학교장은 그 시간을 “학교에서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이라 했고, 한 학생은 성명문을 발표했다. 그 시간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교사와 학생이 값진 정서적 유대를 쌓는 살아 있는 교육”이었다는 것이다.

수업 결손을 말하는 이도 있었고, 평생 남을 교육을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정말 교육이었다면, 무엇을 가르쳤다는 것일까. 학생들이 축구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감각을 몸으로 익혔다는 것인데, 그런 경험은 과연 얼마나 교육적인가.

베네딕트 앤더슨은 네이션(nation 국가 / 민족)을 사람들이 스스로를 하나의 공동체로 상상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사회적 산물로 설명했다. 근대 국가는 학교와 군대, 신문과 방송, 국기와 국가(國歌)를 통해 바로 이 상상을 조직해 왔다. 서로 알지도 보지도 못한 5천만 명이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2002년의 열기는, 우리 사회가 스스로를 하나의 공동체로 감각한 강력한 장면이었다. 뒤르켐의 말처럼 의례는 공동체가 자기 자신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자리이고, 월드컵은 그 의례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무대다.

그러나 스포츠를 통한 국민 형성(nation-building)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기억은 한 방향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하나는 식민지 시기의 기억이다. 1936년 베를린, 일장기를 가슴에 단 청년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조선 사람들은 그 승리를 일본 제국의 승리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빼앗긴 이름과 국기 뒤에서도, 조선인이 세계의 무대에서 이겼다는 사실을 읽어냈다. 우승 호외를 집어 든 심훈은 그 뒷면에 즉석으로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라고 적었다. 국가를 빼앗긴 조선 민중에게 스포츠는, 지배에 맞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저항의 언어였다.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 시기의 기억이다. 국민교육헌장과 반공교육, 애국조회와 국기 게양식은 단일한 국민상을 신체에 새기기 위해 동원된 장치였다. 같은 국민 형성이지만, 식민지 시기 스포츠가 저항의 기억으로 남았다면, 권위주의 시기 국가주의 의례는 비판을 봉쇄하는 억압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국민 형성’이라는 말 앞에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은 더 이상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조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가 공동체를 대표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논쟁한다. 공동체의 경계는 그렇게 논쟁 속에서 거듭 다시 그어진다.

나는 그 경계짓기를 한 고등학생의 성명문에서 보았다. 학생은 학교가 내세운 교훈인 정직·명랑·근면을 학교장에게 되돌려 묻는다. 교사의 자율성과 권위를 옹호하고, 학생회 부회장이 아니라 한 개인의 자격으로 서명하며, 부당함 앞에서 교사의 버팀목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공동체 의식”이라는 말로 시작한 그 문서는, 공동의 가치를 내세워 권위에 따져 묻는다. 거기 있는 것은 줄 맞춰 정렬된 애국조회의 국민이 아니다. 권력에 반문하며 우리의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되묻는 개인이다.

오늘의 개인은 축구라는 즐거운 경험으로 네이션을 체험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 공동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함께 따져 묻는다. 공동체를 경험하는 일과 그것을 질문하는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 비판 없는 공동체 경험은 동원으로 미끄러지고, 경험 없는 비판은 허공을 친다. 그 시간에 교육이 있었다면,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외쳤기 때문이 아니다. 그 외침이 무엇을 뜻하는지 되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202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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