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Games

Han Seungbaek Blog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월드컵 2: 루카 지단, 알제리의 유니폼을 입다

스포츠와 정치경제

by 남산도사 2026. 10. 23. 00:59

본문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 프랑스 아트사커의 전설 지네딘 지단의 아들 루카 지단이 알제리 대표팀 골키퍼로 나선다. 아버지 지단은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의 알제리계 프랑스인이고, 그의 부모는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이민자였다. 아들 루카 지단은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지만, 프랑스 성인 대표팀 공식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FIFA 규정에 따라 2025년 알제리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네딘 지단은 프랑스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1998년 월드컵 우승과 유로 2000 우승을 이끌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프랑스를 결승까지 올려놓았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흑인, 백인, 아랍계가 함께 만든 팀이라는 뜻에서 ‘Black-Blanc-Beur’라는 말로 불렸다. 지단과 함께 뛰었던 앙리, 드사이, 비에이라, 튀랑의 출신 배경도 프랑스 본토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앙리는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계 이민자 가정의 자녀였고, 드사이와 비에이라는 각각 가나와 세네갈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선수였다. 튀랑은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과들루프에서 태어나 본토로 이주했다. 이들의 출생과 가족사는 프랑스 축구대표팀의 구성이 식민지·해외영토·전후 이주의 역사 위에서 구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알제리는 특별했다. 알제리는 단순한 해외 식민지가 아니라 한때 프랑스 본토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던 곳이다. 1962년 독립으로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두 사회의 관계는 여전히 긴밀하게 이어졌다. 프랑스어와 행정·교육의 흔적은 깊게 남았고, 전후 노동 이주를 통해 알제리 출신 이주민과 그 가족들이 프랑스 사회 안에 자리 잡았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산업 재건과 경제성장 과정에서 대규모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알제리를 비롯한 마그레브와 서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은 공장, 건설현장, 항만과 도시 하층 노동시장으로 들어왔다. 1970년대 이후 이들의 체류가 장기화되고 프랑스 안에 생활 기반이 형성되면서, 그 자녀 세대가 프랑스 사회 안에서 성장했다.

전후 노동 이주가 프랑스 사회 안에 정착하고, 그 자녀 세대가 프랑스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프랑스 국적법도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부모 중 한 사람이 1962년 독립 이전 알제리에서 태어난 경우, 그 자녀가 프랑스에서 태어나면 출생과 동시에 프랑스인이 될 수 있었다. 또한 부모가 알제리에 남아 있더라도 프랑스 국적을 독립 이후에도 유지한 경우에는, 자녀가 알제리에서 태어나더라도 혈통에 따라 프랑스 국적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알제리가 한때 프랑스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이렇게 알제리계 이민자 후손의 시민권 구조 안에 제국의 과거를 남겨 놓았다.

그러나 법적 시민권이 곧 사회적 인정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알제리계와 아프리카계 프랑스인은 프랑스 시민이면서도 이름과 피부색, 종교와 거주지, 계급적 배경을 통해 사실상 ‘2등 시민’처럼 취급되었다. 시민권과 사회적 인정 사이에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 간격이 존재했다.

축구는 이 간격을 가장 대중적으로 드러내는 장이었다. 프랑스 대표팀은 이민자 후손에게 강력한 사회적 상향 이동의 무대였다. 파리와 마르세유 외곽의 이민자 밀집 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은 축구를 통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고, 프랑스 사회는 그들을 통해 나라의 통합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들은 골을 넣고 우승컵을 들어 올릴 때에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여전히 이민과 치안, 통합 실패의 이름으로 호명되었다.

이 모순은 2001년 프랑스와 알제리의 친선경기에서 폭발했다. 1962년 알제리 독립 이후 처음 열린 양국 대표팀 경기에서 프랑스 국가가 울려 퍼지자 야유가 쏟아졌고, 프랑스가 4-1로 앞서던 후반 76분 무렵 관중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에서 태어났거나 자란 알제리계 청년들이 프랑스 국가에 야유를 보내고, 알제리 대표팀에 더 강한 감정적 소속을 드러낸 것이다. 1998년 지단의 성공이 통합의 신화였다면, 2001년의 그 밤은 그 신화가 얼마나 불안한 토대 위에 서 있었는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 문제는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정치 쟁점으로 폭발했다.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은 지단과 드사이, 비에이라와 앙리처럼 이민자 배경을 가진 선수들을 겨냥해, 프랑스 대표팀이 진정한 프랑스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프랑스 축구는 어떤 이름과 피부색, 어떤 출신과 몸을 프랑스 국민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둘러싼 상징 정치의 무대가 되었다.

1998년의 지단은 프랑스 대표팀 안에서 알제리계 프랑스인의 성공을 상징했다. 한 세대 뒤, 루카 지단은 알제리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는다. 지단이라는 이름은 이제 식민지배 이후 프랑스가 만들어 온 통합의 서사와, 알제리라는 지워지지 않는 역사적 소속을 함께 품게 되었다. 식민지배는 끝났지만, 노동 이주와 집단의 기억, 도시 외곽의 삶은 대표팀이라는 상징을 통해 계속 현재로 되돌아온다.

루카 지단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지단의 아들이고, 알제리계 이민자의 후손이며, 스페인 클럽에서 뛰는 골키퍼다. 1998년 지단이 프랑스의 이름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면, 2026년 루카 지단은 알제리의 이름으로 같은 무대에 선다. 국가대표 유니폼은 선수의 이름을 하나의 국가 아래 세우지만, 그 이름 뒤에는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기억이 남아 있다. 루카 지단의 선택은 독립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2026.06.1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