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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5: 홍명보의 말

체육단체와 스포츠 정책

by 남산도사 2026. 10. 2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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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이 결국 사퇴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설명보다 책임을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사람들이 기대는 아마도 "왜 그런 선발을 했는지”, "왜 스리백을 고집했는지”, "왜 남아공전에서 그토록 무기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을 테지만, 감독직을 내려놓는 마지막 순간에도 그는 설명 대신 책임을 택했다.

나는 홍명보를 향한 국민적 공분이 상당 부분 그의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설명을 요구받을 때마다 도덕의 언어로 대답했다. ‘책임'이 대표적이다.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고 했지만 직을 내려놓는 것만으로 책임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선발의 책임인지, 전술의 책임인지, 준비의 책임인지, 교체의 책임인지, 상대 분석의 책임인지 그의 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책임은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그가 대표팀 감독을 맡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나를 버렸다”고 했고, "이제 나는 없다”고 했으며,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며 자신을 지우고 한국 축구를 위해 모든 걸 던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비장한 ‘결심'이 아니라 설명이 필요했다. "왜 홍명보인가”, "2014년 월드컵 실패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울산을 시즌 중에 떠나는 일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협회는 어떤 절차와 기준으로 그를 선발했는가”. 이 의문에 대한 그의 답은 언제나 설명이 아닌 헌신과 결심이었다.

선임 과정에서는 헌신을, 패배 뒤에는 책임을, 사퇴 자리에서는 다시 한국 축구를 향한 마음을 말했다. 설명이 있어야 할 자리를 도덕의 언어가 매번 대신하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책임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그가 말하는 도덕의 언어들은 그 어떤 설명도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같은 화법이 그가 쌓아온 명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홍명보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의 상징이다. 선수로, 주장으로, 협회 행정가로,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그는 늘 국가대표의 중심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한국 축구와 분리해서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버렸다”는 말도, "모든 판단의 기준은 한국 축구였다”는 말도 모두 국가대표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서 나온 말들이다. 그는 언제나 한국 축구와 스스로를 등치한다.

그렇게 쌓인 명성은 권력이 되었다. 대표팀의 영광이 그에 대한 판단을 대신했고, 한국 축구의 상징이라는 지위는 절차와 검증의 질문을 지워냈다.

한국 축구와 자기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래된 자기동일시는 그의 태도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리고 이 동일시는 사람을 실제보다 크게 만든다. 자신의 선택을 한국 축구의 운명과 연결하고, 자신을 향한 질문을 한국 축구를 향한 공격처럼 받아들인다. 그의 헌신이 곧 한국 축구의 이익이라는 믿음도 여기서 나온다. 그동안 그에게 설명이 불필요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권위가 이제는 그를 보호하지 못한다. 실패한 감독이 여전히 상징의 권위 속에서 말하고, 그 권위로 설명의 책임을 비켜가는 모습을 사람들은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패배한 것보다 패배를 설명하지 않는 그 화법은 이제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한다. 한때 그를 보호하던 한국 국가대표팀의 중심이란 그 상징이 이제는 아무것도 가려주지 못한다. 이제 사람들은 그 무게만큼 더 무거운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대표와 자신을 동일시해 온 세월 동안 홍명보는 설명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끝났다.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지, 어떤 판단을 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설명해야 했다. 사람들의 분노가 향하는 곳은 패배가 아니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 온 그 오래된 감각이다. 설명되지 않은 책임은 책임이 아니다.

 

2026.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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