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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병역특례의 기원과 정당성

체육단체와 스포츠 정책

by 남산도사 2026. 10. 24.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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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특례제도가 처음 만들어진 1973년의 제도적 배경은 운동선수의 ‘국위선양’이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병역자원은 넘쳐났지만 그 많은 인원을 병영에 수용해 먹이고 입힐 여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젊은 남성 노동력을 군수업체·기간산업체·연구기관 등에 투입해 산업화에 활용하는 방안이 만들어졌는데, 그게 바로 병역특례다.

체육은 이 제도의 여러 대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1973년 법에는 ‘국가이익을 위하여 그 특기의 계발 또는 발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어 특기자선발위원회가 선발한 자’라고만 되어 있었을 뿐, 어느 대회에서 몇 등을 해야 한다는 기준도 없었다. 그래서 1970년대 체육인 가운데 실제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한국 최초의 금메달을 딴 양정모가 유일했다.

지금처럼 국제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운동선수에게 병역혜택을 주는 제도가 생긴 건 5공화국 이후다. 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직후인 1981년, 올림픽 · 세계선수권 · 유니버시아드 · 아시안게임 · 아시아선수권에서 3위 이상 입상한 선수에게 병역특례를 부여했고, 한국체육대학 졸업생 가운데 성적 상위 10%까지 대상에 포함시켰다. 국제대회의 메달과 성적을 상징정치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던 5공화국의 의지와 맞닿아 있다.

이후 특례의 기준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운동선수 병역특례가 국가대표의 성취를 ‘우리의 성취’로 받아들이는 공동체적 상상 위에서 정당성을 얻어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래서 2002년 월드컵 때처럼 대표팀이 '우리'라는 공동체의 감각을 강화하면 있지도 않던 기준을 만들어 병역특례를 주기도 하고, 반대로 공동체를 결속시키기는커녕 ‘우리’라는 감각을 흔들어 대면 그 순간 여론은 특례의 정당성을 다시 묻는다. 이번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금메달을 땄다고 병역특례의 정당성까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가. 아니다. 운동선수 병역특례 제도를 지탱하는 건 국가대표의 성취를 ‘우리의 성취’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공동체의 상상이다. 선수들은 그 상상에 금이 가지 않도록 신중했어야 했다. 그 상상이 깨지면 병역특례의 정당성도 함께 흔들린다.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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