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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성판별의 역사 ① — 육안 검사와 여성성의 규율

스포츠와 젠더

by 남산도사 2026. 10. 2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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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임을 증명하라: 스포츠가 여성의 몸을 검사하기 시작한 이유

스포츠에서 성판별 검사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명분으로 시행되었다. 남성이 여성으로 위장해 경기에 출전한다면 여성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정작 누구를 여성으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분명한 기준이 없었다. 대신 그 시대의 의학적 지식과 사회가 믿어 온 여성성의 기준이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스포츠 성판별의 역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누가 여성인지를 확인한다는 명분 아래, 누가 여성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해 온 역사다.

1. 여성의 몸을 설명하는 과학, 자궁에서 성호르몬으로

19세기까지 서구 의학이 여성의 몸에서 가장 주목했던 기관은 자궁이었다. 당시 의학은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주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재생산 기능을 중심으로 이해했다. 심지어 여성에게 발생하는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자궁과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했다(Oudshoorn, 1994).

이러한 의학적 관념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규정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담당하는 존재라면, 격렬한 신체활동은 그 본래의 기능을 해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했다. 20세기 초 여성의 스포츠 참여가 확대되었을 때 의학계가 우려했던 것도 바로 이 문제였다. 격렬한 운동이 월경과 생식 기능에 해롭고, 여성의 몸을 남성처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Erikainen, 2019).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역시 여성의 스포츠 참여에 부정적이었다. 그에게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남성의 활동이었으며, 여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선수로서 경쟁하는 것보다 남성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찬사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스포츠 참여는 계속 증가했다. 특히 1920~1930년대 국제 스포츠 무대에 등장한 여성 선수들은 그동안 여성의 신체적 한계라고 여겨졌던 관념에 도전했다. 이들은 더 빠르게 달리고, 더 높이 뛰었으며, 더 강한 근력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시기에 여성과 남성의 몸을 이해하는 의학적 지식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1920~1930년대는 성호르몬 연구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에드거 앨런(Edgar Allen)과 에드워드 도이지(Edward Doisy)는 1920년대 에스트로겐 연구에 기여했고, 조지 코너(George Corner)와 윌러드 앨런(Willard Allen)은 1928년 황체에서 프로게스테론으로 알려지게 될 호르몬을 분리했다. 이후 아돌프 부테난트(Adolf Butenandt) 등의 연구를 통해 프로게스테론의 정제와 구조 규명이 이루어졌다. 1935년에는 테스토스테론의 분리와 합성에 관한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남성과 여성의 몸을 이해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 이전까지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생식기관을 지닌 두 종류의 신체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성호르몬 연구는 이처럼 명확한 구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흔히 '남성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안드로겐이 여성의 몸에서도 생성되고, '여성 호르몬'으로 알려진 에스트로겐 역시 남성의 몸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의 몸이 완전히 다른 호르몬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호르몬의 분비와 작용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과학사 연구자인 넬리 아우츠호른(Nelly Oudshoorn, 1994)은 이러한 발견이 남성과 여성의 구분에 대한 기존 관념을 흔들었다고 설명한다. 성별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상태라기보다, 다양한 생리학적 요인이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당시 내분비학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성별 불안정성(sex instability)'이나 성적 특성의 상대성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하기도 했다.

물론 성호르몬이 남녀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생물학적 성별이 하나의 연속선으로만 구성된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남성성과 여성성이 전혀 다른 두 종류의 호르몬에 의해 명확히 구분된다는 설명은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발생한다.

과학은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경계가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사회는 오히려 그 경계를 더욱 분명하게 유지하려 했다.

성호르몬은 성별의 생물학적 복잡성을 설명하는 지식인 동시에, 어떤 신체가 정상적인 남성 또는 여성의 몸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활용되었다. 근육이 발달했거나 목소리가 낮은 여성은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과도하게 받은 '비정상적인 여성'으로 의심받을 수 있었다.

특히 스포츠는 이러한 의심이 집중되는 공간이었다. 전통적인 여성성의 기준을 넘어서는 뛰어난 운동 능력이 오히려 그 선수가 여성인지 의심하는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신체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운동 성과가 역설적으로 여성이라는 자격을 의심받게 만드는 상황. 스포츠의 성판별 검사는 이러한 모순 속에서 등장했다.

2. 1936년 베를린올림픽, 여성임을 증명해야 했던 챔피언

1936년 베를린올림픽 여자 육상 100m 결승전에서는 미국의 헬렌 스티븐스(Helen Stephens)와 폴란드의 스텔라 월시(Stella Walsh)가 맞붙었다.

두 선수는 당시 세계 정상급 단거리 선수였다. 특히 뛰어난 체격과 강한 근력을 지닌 스티븐스는 전통적인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 결과는 스티븐스의 승리였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후 폴란드 측에서는 스티븐스가 정말 여성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의 스티븐스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의심받았고, 결국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당시에는 성별을 확인하기 위한 표준화된 국제 규정이나 검사 절차가 없었다. 따라서 스티븐스의 성별은 외부 생식기를 직접 관찰하는 신체검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검사 결과 그는 여성으로 인정받았고 금메달을 유지했다(Schultz, 2011; Pieper, 2016).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 사건은 상당히 기묘하다. 100m를 가장 빠르게 달린 선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의심받았고, 자신의 몸을 검사받음으로써 그 의심을 해소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상대 선수였던 스텔라 월시의 이야기다.

월시는 1980년 미국에서 강도 사건으로 사망했다. 이후 부검 과정에서 그가 일반적인 여성의 성발달 양상과 다른 신체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사례를 인터섹스(intersex), 또는 성발달차이(DSD)의 맥락에서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월시를 남성으로 규정하거나 그의 경기 성과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사례는 외모나 단일한 생물학적 특징만으로 인간의 성별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두 선수를 둘러싼 논란에서 주목할 것은 성별에 대한 의심이 발생하는 방식이다.

뛰어난 운동 능력, 발달한 근육, 남성적으로 보이는 외모 등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만한 근거로 받아들여졌다. 생물학적 검사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회적으로 통용되던 여성성의 기준이 먼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스포츠의 성별 확인이 공개적으로 문제화된 대표적인 초기 사례였다. 그러나 이 사건 하나만으로 이후의 성판별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1930년대에는 성전환 사례, 여성 선수의 외모와 운동 능력에 대한 논쟁 등 여러 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여성부 출전 자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다(Heggie, 2010).

그러한 상황에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1937년 성별에 대한 이의가 제기된 선수에게 의학적 검사를 요구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로써 여성 선수의 성별은 더 이상 개인적 신분이나 사회적 인정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스포츠 기구가 의학 전문가의 판단을 근거로 여성부 출전 자격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권한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Stella Walsh (right) congratulates Helen Stephens after she won the women's 100 metres at the 1936 Olympics. Stephens was given a gender test, which she passed. Photograph: Getty

3. 여성성 증명서에서 누드 퍼레이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포츠의 성별 확인은 더욱 제도화되었다.

1946년 IAAF는 여성 선수에게 의사가 발급한 성별 확인 증명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흔히 '여성성 증명서(femininity certificate)'라고 불리는 문서였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IOC도 이러한 방식을 받아들였다.

여성 선수는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의사의 서명을 통해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증명서는 요구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여성인지를 판단하는 통일된 기준은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여성성에 대한 판단은 각국 의료진과 스포츠 관계자의 인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신체가 여성다운 것인지, 어느 정도의 근육 발달이나 신체적 특징을 정상적인 여성의 범위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사회적·문화적 규범의 영향을 받았다(Heggie, 2010).

이러한 불안정한 제도에 새로운 긴장을 불어넣은 것은 냉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가 형성되면서 국제 스포츠는 두 정치 체제가 경쟁하는 또 하나의 무대가 되었다. 올림픽 메달은 단순한 선수 개인의 성과를 넘어 국가의 우월성과 체제의 성취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과 동구권 여성 선수들의 뛰어난 성과는 서방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서구 사회에서 여성의 운동은 여전히 전통적인 여성성의 규범과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사회주의 국가들은 국가 주도의 체계적인 선수 육성을 통해 여성 선수들의 신체적 능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순수한 훈련 방식이나 스포츠 정책의 차이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근육질의 몸과 강한 운동 능력을 갖춘 동구권 여성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자, 서방 언론과 스포츠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이 정말 여성인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심지어 남성 선수를 여성으로 위장하여 출전시키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다(Cahn, 1994; Heggie, 2010).

물론 이러한 의혹을 동구권 선수들의 성별에 관한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의심이 당시 스포츠계에서 어떤 정치적 기능을 수행했는가이다.

냉전기의 스포츠에서는 상대 국가의 뛰어난 성과를 인정하는 대신, 그 성과가 부정한 수단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특히 여성 선수들의 강한 신체는 이러한 의혹이 집중되는 대상이었다.

그 결과 기존의 여성성 증명서는 더 이상 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각국 의사가 발급한 증명서를 신뢰할 수 없다면 국제대회 현장에서 직접 검사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1966년 IAAF는 유럽육상선수권대회에서 새로운 성판별 검사 방식을 시행했다.

이른바 '누드 퍼레이드(nude parade)'라고 불린 강제 신체검사였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된 이 대회에서는 여성 선수 243명이 여성 의사 세 명으로 구성된 검사단 앞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선수들은 외부 생식기와 신체적 특징을 직접 관찰당해야 했다. 당시에는 이를 남성이 여성으로 위장해 출전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객관적인 검사라고 설명했다(Pieper, 2016; Ritchie et al., 2008).

하지만 선수들에게 이 검사는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자신의 운동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훈련해 온 선수들이, 경기장 밖에서는 자신의 몸을 드러내며 여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의 육안 검사에는 외부 생식기를 관찰하는 것뿐 아니라 유방과 같은 2차 성징을 확인하는 절차도 포함되었다. 일부 대회에서는 더욱 침습적인 신체검사까지 시행되었다. 이러한 검사 방식은 선수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성별 확인은 단순히 생물학적 특징을 검사하는 행위에 머물지 않았다. 여성의 외모, 신체적 특징, 때로는 사회적 행동까지 정상적인 여성성의 범주에 부합하는지 평가하는 '여성성 인증(femininity certification)'과 '여성성 조사(investigations of femininity)'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Birrell & Cole, 1994; Schultz, 2011).

그런데 이러한 검사는 인권 침해라는 문제를 떠나 과학적 타당성 자체에도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인간의 성별은 외부 생식기의 형태만으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생식기관, 염색체, 호르몬, 성발달 과정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검사자의 육안과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일관되고 정확한 판정을 보장하기도 어려웠다.

육안 검사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가장 불안정한 성별 판단 방식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4. 스포츠가 검사한 것은 성별인가, 여성성인가

여기서 우리는 성판별 검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계가 여성 선수를 검사한 공식적인 이유는 공정한 경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여성부와 남성부를 구분하여 운영하는 스포츠에서 출전 자격을 확인하려는 요구 자체에는 제도적 목적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된 검사 방식은 결코 시대의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어떤 여성을 의심할 것인가? 어떤 신체를 여성답지 않다고 판단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여성임을 증명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의학적 사실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그 시대의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관념이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근대 사회에서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 가운데 하나로 '규율 권력(disciplinary power)'에 주목했다. 근대 권력은 단순히 법을 위반한 사람을 처벌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검사하며, 특정한 기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방식으로도 작동한다(Foucault, 1977).

푸코의 관점에서 보면 초기 스포츠의 성판별 검사는 이러한 규율 권력이 선수의 신체에 작동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여성 선수는 여성부에 출전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의학적 검사의 대상으로 제공해야 했다. 검사자는 정상적인 여성의 신체가 무엇인지 판단할 권한을 부여받았고, 선수는 그 판단을 받아들여야 했다.

여기서 의학적 검사는 단순한 신체 확인 절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검사는 어떤 신체가 여성의 범주에 속하는지 결정하는 제도적 행위였다. 그리고 그 판단의 근거에는 시대적으로 통용되던 여성성의 기준이 개입되어 있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검사가 여성 선수들의 신체적 가능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더욱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여성 선수들은 이전 세대보다 빠르고 강해졌다. 과학기술과 훈련 방법의 발전은 여성 선수들이 기존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성취가 기존 여성성의 기준을 위협할수록 스포츠계는 오히려 여성임을 증명하도록 요구했다.

여성 선수의 운동 능력이 발전할수록 여성의 몸을 의심하고 검사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진 것이다.

이것이 초기 스포츠 성판별의 중요한 역설이다.

성판별 검사는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기 위한 과학적 절차를 표방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사회적으로 승인된 여성의 신체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경계를 유지하는 규율적 기능도 수행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스포츠의 성판별은 성별을 확인하는 과정인 동시에 여성성의 경계를 설정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이었다.

5. 더 과학적인 검사를 찾아서

1960년대에 이르러 육안 검사의 한계는 점차 분명해졌다.

검사 방식이 선수들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커졌을 뿐 아니라, 외부 신체의 관찰만으로는 정확한 성별 판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과학적 문제도 제기되었다.

스포츠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검사 기술을 모색했다. 의사의 눈과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대신,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한 과학적 지표를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염색체 검사였다.

1967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은 염색체를 활용한 성판별 검사를 도입했고, 1968년 국제올림픽위원회도 이를 채택했다. 이제 여성임을 증명하는 기준은 외부로 드러난 신체의 특징에서 세포 속의 염색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염색체 검사가 성별에 관한 모든 논쟁을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염색체를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인간의 성별이 단순한 두 범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눈으로 판단하던 시대가 끝나자, 이번에는 현미경이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결정하는 권위를 갖게 된 것이다.

과학은 더 정밀해졌지만, 스포츠가 답해야 할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여성을 구분해야 하며, 그 기준을 정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질문은 이후 염색체 분석 시대에도 반복된다.


이 글은 전에 쓴 학술논문을 재구성한 것이다. 원논문의 핵심 논의와 학술적 근거를 유지하되, 일부 역사적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설명을 보완하였다.

원논문

한승백(2024). 스포츠 성판별 분석의 딜레마: 의과학기술 진보와 성별 이분법의 줄다리기.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37(특별호), 45–68.

https://doi.org/10.22173/ksss.2024.37.Special%20Issue.4

주요 참고문헌

  • Birrell, S., & Cole, C. L. (Eds.). (1994). Women, sport, and culture. Human Kinetics.
  • Erikainen, S. (2019). Gender verification and the making of the female body in sport: A history of the present. Routledge.
  • Foucault, M. (1977).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the prison. Pantheon Books.
  • Heggie, V. (2010). Testing sex and gender in sports: Reinventing, reimagining and reconstructing histories. Endeavour, 34(4), 157–163. https://doi.org/10.1016/j.endeavour.2010.09.005
  • Oudshoorn, N. (1994). Beyond the natural body: An archaeology of sex hormones. Routledge.
  • Pieper, L. P. (2016). Sex testing: Gender policing in women's sports.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 Ritchie, R., Reynard, J., & Lewis, T. (2008). Intersex and the Olympic Games.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of Medicine, 101(8), 395–399. https://doi.org/10.1258/jrsm.2008.08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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