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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Seungbaek Blog

스포츠와 정치경제
2026. 10. 20. 20:57 도쿄올림픽 보이콧해야 하나?

며칠전 한 교수분이 페이스북에 도쿄 올림픽에 대한 글을 올렸다. 내용을 요약하자면1. 병역 특례나 메달 연금을 폐지해야 한다. 이런 걸로 스포츠를 통치하는건 후진국이 행태이지 지금 시대에는 맞지않는다. 2. 일본이 지도에 독도를 그려 넣었고,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 걸었던 아래 현수막도 내려야 했고, 대통령 딸딸이 소리까지 들었는데도 도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해야 하는 게 맞지않다.3. 우리가 올림픽에 이 꼴을 당하면서도 파견을 하는 이유는 병역 특례와 메달 연금이 대한민국 체육과 국가 품위에 족쇄 노릇을 하기 때문. 즉, 이런 제도적 혜택이 걸려있는 선수들 때문에 보이콧이나 철수를 입에 담지 못한다.4. 특례와 연금이라는 좀비가 두려워서 독도를 떼이고 충무공의 정신마저 떼이면서도 감히 보이콧이나 철수를..

스포츠 윤리
2026. 10. 20. 20:57 스포츠계의 공정 이슈: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한국 사회의 스포츠 공정성 전쟁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만큼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하며,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열심히 노력한 만큼 성취하길 기대한다. 그러나 어디 현실이 그런가. 성공사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하고, 사교육으로 대변되는 넉넉한 지원 속에,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는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혈연 – 지연 - 학연의 끈끈한 사회적 자본의 토대 위에, 소위 우리가 남이 아닌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야 제대로 된 꿈을 펼칠 수 있다. 흙수저는 흙수저일 뿐이고, 세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아무리 용을 써봐야 내 노력과 능력으론 성공..

스포츠 역사와 공간
2026. 10. 20. 20:53 1980년대 부동산 조세정책과 강남 테니스장

한국의 도심 속 테니스장의 사회적 생산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요인 중 하나는 부동산 조세정책이다. 과거 테니스장 경영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테니스가 부동산 붐에 편승해 저변확대, 발전해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이다. 1980년대 부동산 조세정책의 영향으로 많은 사설 테니스코트들이 생겨났고, 정책이 변화에 따라 한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공한지세의 면제가 도심 속 테니스장 건설에 미친 영향 1974년 1월 14일, 유신헌법 아래 공포된 긴급조치 즉,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대통령 긴급조치 제3호, 대통령령 제7042호)’에서는 공한지세를 포함한 대대적인 조세규정이 제정되었다. 여기에는 고급주택, 사치성물품, 승용차, 공한지 등에 대해 높은 세율을 적용하여 사치성 재산에 중..

스포츠 역사와 공간
2026. 10. 20. 20:51 사치성 레저시설로 찍혔던 테니스장

70년대 초반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한 사설 테니스장들 가운데 일부는 휴게실과 라커룸 등이 갖추어진 클럽하우스와 나이트, 주차장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회원제라는 경영방식을 통해 특정 계층을 위한 차별적 공간을 제공하였다. 성북구에 있었던 남경 테니스클럽의 경우 72년 개인회원이 약 10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별도로 코트 사용료 6백 원을 지불해야 했다. 당시는 택시 기본요금이 90원, 자장면 값이 30원이었던 시절이란 점을 감안하면 당시 회원제 테니스장은 일반적인 대중의 접근이 쉽지 않은 구별짓기의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70년대 초 테니스코트 1면을 만드는데 땅 값을 제외하고라도 평균 1백여 만 원, 야간조명의 경우 3백여 만 원의 많은 시설비가 들었기 때문에, 사설 ..

스포츠 역사와 공간
2026. 10. 20. 20:51 1970년대 테니스 인구의 증가와 사설 테니스장

김의진(71세)은 60년대 대학 생활을 했고, 71년부터 육군사관학교에서 체육교관을 지내면서 처음 테니스를 접했다. 그에 따르면 학창시절 그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 내에 이미 테니스장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학생 신분으로서 테니스를 친다는 것은 상상 못할 일이었고,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은 교수들, 그중에도 일부 유학파 교수나 의과대학 교수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75년 그가 제대 후 교수가 되어 대학에 돌아왔을 때, 대학에는 교양과정으로 테니스과목이 개설되어 있었다.60년대 연식정구 선수로 활약 했다는 정보제공자 김원종(69세)은 테니스가 점차 보급되면서 테니스와 연식정구를 병행했지만 테니스코트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그는 한 제약회사 뒤뜰에 있었던 테니스장에서 사장과 간부들..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19. 11:22 1969년 예비고사 시대의 체육특기자제도

1969학년도부터는 ‘대학입시자격고사(이하 예비고사)’가 실시되었다. 6년 만의 국가고사 부활이었고, 예비고사를 통과한 학생에 한하여 대학별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다만 체육계열 학과 입학생의 경우 교육법 제111조 1항(법률 제2045호)에 “예능 또는 체육학계의 학과에 입학할 자는 예비고사를 거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예외를 두어 예비고사를 면제해 줬다. 체육관련 학과가 있던 대학은 예비고사제에서도 특기자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문제가 된 것은 고려대와 연세대를 비롯한 체육학과가 없는 대학들이었다. 63학년도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가고사의 면제 혜택이 체육계열 학과에만 주어짐으로써, 체육관련 학과가 없는 대학들이 체육특기생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체육특기 지원자가 자력으로 예비고사를 통과..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19. 11:21 1964 ~ 1968년의 체육특기자제도

1964학년도부터 1968학년도까지의 대학입시는 국가고사 없이 전․후기 각 대학별로 시험을 치렀다. 앞서 해방이후부터 62년까지의 국가개입 공백기와 마찬가지로, 대학별 자율선발 체제 아래서 대학의 우수선수 영입전략은 보다 쉽게 관철될 수 있었다. 체육특기자 선발과 관련하여 문교부는 일반응시자와 함께 응시하되 정해진 기준에 의거 특전을 부여하였고, 합격자의 선정은 각 대학에 일임하였다(경향신문, 1963.06.19.). 단 연세대나 고려대 같이 체육계열학과가 없는 경우 대학정원의 2%(66학년도는 3%)로 특기자 선발 인원을 제한하였고, 체육대학이나 체육학과가 있는 한양, 경희, 숙명 등에서는 문교부가 지시한 비율에 관계없이 우수선수를 우선적으로 모집할 수 있었다(동아일보, 1965.02.16.). 문교부..

학생선수와 학교운동부
2026. 10. 19. 11:20 1962 ~ 1963년의 체육특기자제도

여전히 체육특기자제도가 군사정부에 의해 1972년에 생겨났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체육백서 같은 정부 문서도 왜곡되어 있다. 그러나 60년대 신문만 들춰봐도 터무니 없는 주장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체육특기자제도를 1972년도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게 단순히 연도의 착오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2년은 유신이 선포된 해였고, 이 제도를 자연스럽게 국가주의 스포츠에 국한하여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간과하게 되는 게 행위자이다. 체육특기자제도 72년 기원의 왜곡 주장은 이 제도가 왜 이렇게 뿌리깊이 한국 학원엘리트스포츠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행위자가 어떻게 역할 했는지에 대한 인식을 잊게한다는 것이다. 체육특기자제도를 ..